- 인간소외 그 잔인한 원죄
- 분류없음
- 2009/03/11 00:36
친구가 영화공짜 티켓이 있다고 해서 진짜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엄태웅주연의 핸드폰이라는 영화였다.
영화본지가 오래되어서, 그 영화가 무엇이든간에 그 몰입감 하나만으로 이미 만족했다.
큰 기대를 안 했지만, 영화끝난후 우리들은 롤러코스터 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코믹, 액션, 스릴 등등
한가지 이야기해보자면, 영화시작부터 끝까지를 관통하던 그 소외감은 상영시간내내 날 씁쓸하게 했다.
소통부재에 의한 소외, 공유할 존재가 없다는 데에서 오는 고독한 소외, 인간이 배제됨으로써 오는 소외...
영화는 핸드폰이라는 소재로 그 문제를 건드리고자 한듯 한데.... 과연, 이런 소외문제가 현대사회만의 문제일까?
사람에게 소외문제는 피할 수 없다. 그리고 해결할 수도 없다. 그래서 잔인하다.
지난주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해본적 없기에, 내가 가보지 않았기에, 어떻게 될 것이라고 가타부타 이야기해줄수는 없지만
그저 믿는거라고 ...
나 또한 2009년 봄,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너를 믿는다
내가 해본적 없기에, 내가 가보지 않았기에, 어떻게 될 것이라고 가타부타 이야기해줄수는 없지만
그저 믿는거라고 ...
나 또한 2009년 봄,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너를 믿는다
- 기후변화홍보대사 프로젝트를 마치며
- 분류없음
- 2009/02/24 23:08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가시적인 결과물을 도출한다는 것은 정말 즐겁고도 힘든일이다. 2월 한달간 모든 에너지를 빼앗긴 듯한 기후변화홍보대사가 오늘 드디어 끝났다. 끝났다는 기쁨과 편히 쉴 수 있다는 안도감 너머의 부족함이 나를 공허한 생각에 잠기게 한다. 다른 팀들의 PPT는 예상대로 깔끔했고, 그들의 언변은 유창했다. 그러나 생각은 다들 비슷했고, 감동을 주는 문제의식은 찾기 힘들었다. 나의, 그리고 우리의 제안서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번 경쟁이 많이 기대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그런 고민거리를 공유했으면 했다. 한 두팀과 의견을 나누긴 했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장벽이 느껴졌다. 내가 소극적인 것인지 아님 우리 대학문화가 그런 것인지, 티타임에도 팀끼리 옹기종기 이번 경쟁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지난번 포럼과 마찬가지로, 이번 홍보대사 경쟁에서도 그러한 공유의 장을 마련하지 못한것이 조금 아쉽다. (내가 나서야 했는데 ;;)
발표능력과 영어능력 다들 기대했던 바이다.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오늘도 역시 내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지?" ....답을 이미 알고 있고, 조금씩 노력하고 있지만, 그들의 뛰어난 실력때문에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나버렸다. 언젠가는 그들처럼 아니 그들을 넘어설 수 있겠지...빨리 제자리로 돌아가 공부를 하자!
체력 역시 평소 인지하고 있지만, 이렇게 나의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 아이디어를 내고, 제안서를 작성하는 내내, 소화불량과 짧은 수면으로 인하여, 나는 오늘 사진에 찍힌 나의 모습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후변화보다도 시급한 나의 문제이다.
팀 구성원 좋았다. 그런데 내가 더 잘했으면, 더 즐겁게 작업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날이 지쳐가는 그들을 보면서 "난 역시 재미없는 녀석인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뒷풀이라도 즐겁게 해야지 !
주제로 돌아와서, 당신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전에 물음을 얻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할것이다. 솔직히, 기후변화 자체에 흥미가 있던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지만, 실은 이런 심각한 공공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대중 스스로에게 자신의 일로써 인식시킬 수 있을까? 라는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단순히 도의적인 행동으로써가 아닌, 비교우위로써 선택가능한 문제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생각들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도는 해보았다. 재현신의 말처럼 생각만 하는 것, 자체가 나의모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하는 지성이 되어라 이것이 이번 프로젝트가 준 답인 것 같다.
돌이켜보니, 아쉬움만 더 커지는 것 같다. 못했던 것만 생각이 난다. 공허함에 당장 내일할일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이 모든 것... 사랑후에만 오는 것들이 아니다. 프로젝트가 끝나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발표능력과 영어능력 다들 기대했던 바이다.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오늘도 역시 내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지?" ....답을 이미 알고 있고, 조금씩 노력하고 있지만, 그들의 뛰어난 실력때문에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나버렸다. 언젠가는 그들처럼 아니 그들을 넘어설 수 있겠지...빨리 제자리로 돌아가 공부를 하자!
체력 역시 평소 인지하고 있지만, 이렇게 나의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 아이디어를 내고, 제안서를 작성하는 내내, 소화불량과 짧은 수면으로 인하여, 나는 오늘 사진에 찍힌 나의 모습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후변화보다도 시급한 나의 문제이다.
팀 구성원 좋았다. 그런데 내가 더 잘했으면, 더 즐겁게 작업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날이 지쳐가는 그들을 보면서 "난 역시 재미없는 녀석인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뒷풀이라도 즐겁게 해야지 !
주제로 돌아와서, 당신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전에 물음을 얻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할것이다. 솔직히, 기후변화 자체에 흥미가 있던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지만, 실은 이런 심각한 공공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대중 스스로에게 자신의 일로써 인식시킬 수 있을까? 라는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단순히 도의적인 행동으로써가 아닌, 비교우위로써 선택가능한 문제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생각들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도는 해보았다. 재현신의 말처럼 생각만 하는 것, 자체가 나의모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하는 지성이 되어라 이것이 이번 프로젝트가 준 답인 것 같다.
돌이켜보니, 아쉬움만 더 커지는 것 같다. 못했던 것만 생각이 난다. 공허함에 당장 내일할일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이 모든 것... 사랑후에만 오는 것들이 아니다. 프로젝트가 끝나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사람과 관계맺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헌데, 그것이 진정 그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 가끔 뒤돌아보게 된다. 오늘같은 날이 그렇다.
가슴 깊은 곳의 답답함을 끄집어 내줄 수 있는 능력...........아직도 ....어렵다;
헌데, 그것이 진정 그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 가끔 뒤돌아보게 된다. 오늘같은 날이 그렇다.
가슴 깊은 곳의 답답함을 끄집어 내줄 수 있는 능력...........아직도 ....어렵다;
-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 ideologie
- 2008/12/09 02:09
- 소설, 인간
시작
2006년 쿤데라의 "농담"이후 이렇게 가슴과 머리를 자극한 소설은 처음인 듯 싶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지을 수밖에 없는 원죄를 잘 묘사했다. 지난번 세미나에서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 오롯이 자아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형성되고 극대화된다는 요지로 진안이가 발제했지만, 내가 느낀 줄기는 그것이 아니다.
인간의 이기과 이타
인간의 본성은 크게 이기성과 이타성 두가지로 논의한다. 이기성은 동물에 가까운 본성이고, 이타성은 인간이 사회내에서 체득하는 후천적 본성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논의 자체를 부정하는 듯하다. 인간은 이기적이며, 이타적이다. 이타성은 교육을 받음으로써 나타나는 본성이 아니라, 이기성안에 내재하는 이타성으로 보고 있다. 기존의 이타성은 사회내에서 이기성을 억제하는 기제로써 교육되고 훈련되어야 하는 본성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이타성은 여타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개체보다 더 많은, 더 우월한, 더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후에 나타나는 여유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계몽주의나 동양의 순자가 주장하듯이 사회내에서 교육, 교화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우월한 지위를 확보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인간의 이타심의 출발은 그의 밥그릇이 뺏기지 않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소설내에서 선생님은 K를 하숙집으로 데리고 온 이유도, 그의 유년시절의 좌절이 하숙집의 두 여인을 통해서 치유되고, 심적으로 안정이 되면서, 적어도 K를 통찰하고 이끌수 있다는 우월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K가 아가씨와 친하게 지내며 평소 자신과의 독점적 관계(사랑)가 위협받게 되니, 선생님의 이타심은 증발해버린다.
선생님이 하숙집 두 여인과의 관계에서 K보다 더 특별한 대접을 받는 다고 느낄 때, 혹은 그 관계들을 그의 뜻대로 주도해 나갈 때, 그는 평온함을 느끼고, 기쁨을 느꼈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비적이다.
인간의 원죄
인간은 자기모순성과 관계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자기모순성은 인간 스스로 고매하고 순수함을 지키고자 할때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선생님의 경우, 유년시절 그렇게 믿었던 작은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으로 타인을 믿지 못한다. 즉, 타인은 나쁘다라는 전제에서 관계를 맺는다. 자기 자신만을 믿었던 선생님은 결국 K와의 일때문에 보기좋게 그의 신념은 무너졌다.
K 역시,"정신적인 향상심이 없는 사람은 바보다"라는 도그마가 스스로를 고통받게 했다. K앞에 나타난 아가씨는 그의 인식을 흔들어 놓았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도달하게 한다. 그의 사랑이 성욕이든 인간적 교류에 있든, 이 감정은 그의 과거와 현재를 지탱한 길찾기에 방해가 되는 것에는 틀림이 없었다. 결국 선생님이라는 타인에게 자신의 길을 묻는 자기당착에 빠진다.
이 둘은 보이지는 않지만, 내적고통을 준 자기모순때문에 자살에까지 이른다.
특히, 관계는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힘이다. 선생님은 특히 남을 의식하기에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만이 아닌, 다른 이를 생각함으로써 생기는 제한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자기모순과 관계, 이것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의 원죄이다.
끝
모든 특히, 잘 만들어진 문학작품이 그러하듯이 지금 이 글에서 서술하지 못하지만, 몇 가지 더 생각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 순간 그것이 명확히 어떤것인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흐른 뒤에 한 번 더 읽어볼 수 있도록 그것은 남겨두어야 겠다.
2006년 쿤데라의 "농담"이후 이렇게 가슴과 머리를 자극한 소설은 처음인 듯 싶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지을 수밖에 없는 원죄를 잘 묘사했다. 지난번 세미나에서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 오롯이 자아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형성되고 극대화된다는 요지로 진안이가 발제했지만, 내가 느낀 줄기는 그것이 아니다.
인간의 이기과 이타
인간의 본성은 크게 이기성과 이타성 두가지로 논의한다. 이기성은 동물에 가까운 본성이고, 이타성은 인간이 사회내에서 체득하는 후천적 본성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논의 자체를 부정하는 듯하다. 인간은 이기적이며, 이타적이다. 이타성은 교육을 받음으로써 나타나는 본성이 아니라, 이기성안에 내재하는 이타성으로 보고 있다. 기존의 이타성은 사회내에서 이기성을 억제하는 기제로써 교육되고 훈련되어야 하는 본성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이타성은 여타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개체보다 더 많은, 더 우월한, 더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후에 나타나는 여유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계몽주의나 동양의 순자가 주장하듯이 사회내에서 교육, 교화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우월한 지위를 확보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인간의 이타심의 출발은 그의 밥그릇이 뺏기지 않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소설내에서 선생님은 K를 하숙집으로 데리고 온 이유도, 그의 유년시절의 좌절이 하숙집의 두 여인을 통해서 치유되고, 심적으로 안정이 되면서, 적어도 K를 통찰하고 이끌수 있다는 우월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K가 아가씨와 친하게 지내며 평소 자신과의 독점적 관계(사랑)가 위협받게 되니, 선생님의 이타심은 증발해버린다.
선생님이 하숙집 두 여인과의 관계에서 K보다 더 특별한 대접을 받는 다고 느낄 때, 혹은 그 관계들을 그의 뜻대로 주도해 나갈 때, 그는 평온함을 느끼고, 기쁨을 느꼈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비적이다.
인간의 원죄
인간은 자기모순성과 관계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자기모순성은 인간 스스로 고매하고 순수함을 지키고자 할때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선생님의 경우, 유년시절 그렇게 믿었던 작은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으로 타인을 믿지 못한다. 즉, 타인은 나쁘다라는 전제에서 관계를 맺는다. 자기 자신만을 믿었던 선생님은 결국 K와의 일때문에 보기좋게 그의 신념은 무너졌다.
K 역시,"정신적인 향상심이 없는 사람은 바보다"라는 도그마가 스스로를 고통받게 했다. K앞에 나타난 아가씨는 그의 인식을 흔들어 놓았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도달하게 한다. 그의 사랑이 성욕이든 인간적 교류에 있든, 이 감정은 그의 과거와 현재를 지탱한 길찾기에 방해가 되는 것에는 틀림이 없었다. 결국 선생님이라는 타인에게 자신의 길을 묻는 자기당착에 빠진다.
이 둘은 보이지는 않지만, 내적고통을 준 자기모순때문에 자살에까지 이른다.
특히, 관계는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힘이다. 선생님은 특히 남을 의식하기에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만이 아닌, 다른 이를 생각함으로써 생기는 제한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자기모순과 관계, 이것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의 원죄이다.
끝
모든 특히, 잘 만들어진 문학작품이 그러하듯이 지금 이 글에서 서술하지 못하지만, 몇 가지 더 생각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 순간 그것이 명확히 어떤것인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흐른 뒤에 한 번 더 읽어볼 수 있도록 그것은 남겨두어야 겠다.
학벌문제는 이번 세미나를 하면서, 아직 해야할 시기가 아니거나, 아님 문제의 핵심을 잘 못 집은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전자의 이유는 내가 아직은 학생의 신분이기에 사회의 쓰디쓴 맛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를 논외로 할 경우, 난 학벌문제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나타내주는 증상일 뿐이지, 이것을 없앤다고
얻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지은이는 학벌문제가 단순히 학력의 문제를 넘어서 지배세력화하고 있다는 것에서 문제제기를 시작한다. 지은이의 논리적 귀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논리이지만, 이것이 학벌에서 야기되는 병폐원인이라고 보기에는 근거가 너무 약하다. 학벌을 가진 집단이 지배세력화하는 요소를 학력과 경제적 우월성을 기초해서, 이것을 타당하게 하는 이데올로기 즉, 게임의 룰을 유리하게 갖고 있다고 하는 데, 이는 보편적이고 당위적인 현상을 뭔가 우리사회만의 문제로 꼬집는 것은 비약이다. 어느 사회나 어느 운동경기이나 경기가 있다면 게임의 룰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이를 유리하게 이용하는 자가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두번째로 우리사회는 왜 특이하게 즉, 다른 국가나 사회와 다르게 학벌의 문제가 심각한가라는 문제도 지은이는 유교적공동체라는 것을 원인의 하나로 집고 있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대가족이나 집성촌같이 큰 울타리의 가족이 해체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국가로 확장적용되면서 국가내에서 파벌이나 끼리끼리라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유교적 공동체라고 했다면, 적어도 중국이나 일본의 사례를 더 지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사회가 주제대상이면서 비교대상도 없이 주장을 편다는 것은 아니올시다였다.
결국, 이 책은 학벌이라는 증상에 대한 상세한 소견서는 될 수도 있지만, 그 원인의 밝히거나, 문제를 설명해주는데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고 한다. 뒤에 대안이 소개되긴 하지만, 나의 학벌에 대한 문제의식부터 차이가 나니, 수긍할 만한 것도 당연히 없었다.
세미나중에 나왔던 이야기중 몇 가지는 좀 더 조사해보고 싶다.
가령 서울대는 어떻게 컸는가?
학벌에서 문제가 되는 사회조직에서의 자기집식구 챙기기문제가 세대간의 문화차이일 수도 있다는것은 충분히 가능성있다고 보여졌다.
이 경우를 논외로 할 경우, 난 학벌문제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나타내주는 증상일 뿐이지, 이것을 없앤다고
얻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지은이는 학벌문제가 단순히 학력의 문제를 넘어서 지배세력화하고 있다는 것에서 문제제기를 시작한다. 지은이의 논리적 귀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논리이지만, 이것이 학벌에서 야기되는 병폐원인이라고 보기에는 근거가 너무 약하다. 학벌을 가진 집단이 지배세력화하는 요소를 학력과 경제적 우월성을 기초해서, 이것을 타당하게 하는 이데올로기 즉, 게임의 룰을 유리하게 갖고 있다고 하는 데, 이는 보편적이고 당위적인 현상을 뭔가 우리사회만의 문제로 꼬집는 것은 비약이다. 어느 사회나 어느 운동경기이나 경기가 있다면 게임의 룰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이를 유리하게 이용하는 자가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두번째로 우리사회는 왜 특이하게 즉, 다른 국가나 사회와 다르게 학벌의 문제가 심각한가라는 문제도 지은이는 유교적공동체라는 것을 원인의 하나로 집고 있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대가족이나 집성촌같이 큰 울타리의 가족이 해체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국가로 확장적용되면서 국가내에서 파벌이나 끼리끼리라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유교적 공동체라고 했다면, 적어도 중국이나 일본의 사례를 더 지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사회가 주제대상이면서 비교대상도 없이 주장을 편다는 것은 아니올시다였다.
결국, 이 책은 학벌이라는 증상에 대한 상세한 소견서는 될 수도 있지만, 그 원인의 밝히거나, 문제를 설명해주는데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고 한다. 뒤에 대안이 소개되긴 하지만, 나의 학벌에 대한 문제의식부터 차이가 나니, 수긍할 만한 것도 당연히 없었다.
세미나중에 나왔던 이야기중 몇 가지는 좀 더 조사해보고 싶다.
가령 서울대는 어떻게 컸는가?
학벌에서 문제가 되는 사회조직에서의 자기집식구 챙기기문제가 세대간의 문화차이일 수도 있다는것은 충분히 가능성있다고 보여졌다.
- 투자자 국가 직접소송제
- International Politics
- 2008/04/04 15:10
거의 유일한 방문객인 "누고"를 위해 글 하나 남긴다. 또 글 좀 쓰라고 x랄 할까봐
영어몰입시범교육중 안구정화의 차원에서 책한권을 시켰다. 300쪽도 안 되는 아담한 분량이 마음에
들어 마일리지로 긁었다. 저자는 홍기빈씨라고 지난번에 수잔스트레인지의 국가의 퇴각을 읽은후
권력으로써 자본이란 개념이 아행행하여 아는 선배에게 추천을 부탁했더니 이분을 꼽더라.
번역한 책도 있고, 이론서도 있었지만 철저하게 안구정화차원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책을 택했다.
우석훈, 이해영씨와 함꼐 반에프티에이를 외치는 지식인이더군...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반에프티에이에 관한 티이브이 광고까지 막던 참여정부가 이 책을 2007년 문화관광부 교양서적으로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그냥 녹색평론사라는 출판사 보고 책이나 팔아주자는 생각으로 목록에 넣지 않았을까 ㅎㅎ
암튼 글은 참 잘 썼더라. 너무 깊지도 않고, 딱 내수준에서 ...필자는 팜플렛이란 개념으로 에프티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날림으로 썼다고 하나, 재수 없는 소리같다. 나같은 이에게는 ...
내용은 알아서들 읽어보고, 필자의 마지막 말이나 언급하고자 한다. "
"흐림 없는 눈으로 세상을 직접보고 판단하겠다"(애니 원령공주 주인공 왈)
투자자 국가 직접소송제처럼 과거 사고방식 또는 정규교육에 익숙한 나에게 이해되지 일들이 너무 많다. 현실과 사실보다 내 사고가 한 발 앞선다면, 철 지난 정치이론이라 정치사상을 보지 않고, 사업을 했겠지만 말이다. 개인vs국가 , 자본vs공익, 효율vs정의 등등등 이 불편한 비대칭성 좀 어떻게 해봐봐
18세기 상인법으로 21세기를 다스리는 미숙함....무엇이 부족했기에 이러한가?
...................................................................................................................................
....................................................그것은 나의 게으름이요. 누고 너의 게으름이다.
그러니 잡생각 그만하고 닥치고 공부하세 난 영어몰입공부 너도 영어공부... 넌 학점 좋으니 경제공부도 덤으로 하거라 ㅋㅋㅋ (조만간 이것 영문번역해야지 너도 해봐라 영어몰입공부 히히)
새해가 된지도 꽤 되었다. 대망의 2008년을 맞이하면서 난 잔병치레를 좀했다. 한주는 소화불량으로 구토를 하고 그 다음주는 원인모를 장염으로 힘없이 주저앉게 되는 웃지못할 고통을 맛 보았다. 1월의 첫날은 산타기에는 자신있던 내 몸이 겨우 한살 차이인 후임을 밑에서 부럽고 허탈하게 바라보았다.
새해가 오면서 나 스스로 적지 않은 부담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나를 이젠 진짜라며 나를 출발선으로 내몰았다. 10대후반 20대초반에는 나에겐 다른이에겐 없는 시간의 면죄부라도 있는 듯이 심연을
참으로 많이 방황했다. 누군가 많은 것을 얻었냐고 물으면 글쎄라고 대답할 것 같고, 또 다른이가 이젠 방향을 좀 잡았냐고 묻는 다면 그건 더 아니올시다라고 답할 것이다.
바닷속 생물이 처음 육지에 올라왔을때의 느낌이 이럴 것 같다. 바다를 아직 다 모르는데, 아직은 바다를 더 보고 싶은데...이제 좀 바다가 익숙해져서 좀 게으름 피우고 싶은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바닷속에서 봤던 것, 살아갔던 방식 이제는 모두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빨리 떨쳐버리고 지상이라는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한다. 이미 이곳은 나보다 빨리 진화한 동물들이 제각기 삶을 뽐내고 있다. 겉으로
부러움, 속으론 조바심이 공존해 숨이 탁탁 막히지만, 폐로 호흡하고 두 다리로 당당히 걷는 것부터 하나하나 시작해야 한다. 바다에서처럼 두려움에 발버둥치다가 가라앉고, 가라앉았다는 좌절감에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악만을 피하자 그리고 모두 부딪쳐 보자. 죽지만 않는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아니한가?
작년에 끝없이 가라앉음을 두려워하자 누군가가 Let it be라고 했던 것을 생각한다. 슬픔이 뿜어져나오면 애써 가두지 않고 흘려보낼 것이고, 기쁨이 날 방방 뜨게 한다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가 볼 것이다.
심연에서 갓 올라온 하등동물에게 자혜를 베풀어주시길 ....
새해가 오면서 나 스스로 적지 않은 부담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나를 이젠 진짜라며 나를 출발선으로 내몰았다. 10대후반 20대초반에는 나에겐 다른이에겐 없는 시간의 면죄부라도 있는 듯이 심연을
참으로 많이 방황했다. 누군가 많은 것을 얻었냐고 물으면 글쎄라고 대답할 것 같고, 또 다른이가 이젠 방향을 좀 잡았냐고 묻는 다면 그건 더 아니올시다라고 답할 것이다.
바닷속 생물이 처음 육지에 올라왔을때의 느낌이 이럴 것 같다. 바다를 아직 다 모르는데, 아직은 바다를 더 보고 싶은데...이제 좀 바다가 익숙해져서 좀 게으름 피우고 싶은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바닷속에서 봤던 것, 살아갔던 방식 이제는 모두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빨리 떨쳐버리고 지상이라는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한다. 이미 이곳은 나보다 빨리 진화한 동물들이 제각기 삶을 뽐내고 있다. 겉으로
부러움, 속으론 조바심이 공존해 숨이 탁탁 막히지만, 폐로 호흡하고 두 다리로 당당히 걷는 것부터 하나하나 시작해야 한다. 바다에서처럼 두려움에 발버둥치다가 가라앉고, 가라앉았다는 좌절감에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악만을 피하자 그리고 모두 부딪쳐 보자. 죽지만 않는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아니한가?
작년에 끝없이 가라앉음을 두려워하자 누군가가 Let it be라고 했던 것을 생각한다. 슬픔이 뿜어져나오면 애써 가두지 않고 흘려보낼 것이고, 기쁨이 날 방방 뜨게 한다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가 볼 것이다.
심연에서 갓 올라온 하등동물에게 자혜를 베풀어주시길 ....
내 주위에는 고맙게도 참으로 부지런하고, 똑똑한 그리고 두 세걸음 앞선 의식을 가진 분들이 많다.
지난번에 영어작문을 할 때도 느낀 것이지만, 나의 저질스러운 학습능력은 무한히 저주하고 싶다.
오늘도 책 한 권을 읽는데... 마침 세미나가 진행되었던 것이라 원문을 읽고 발제문을 읽으며 내용을
정리하기 좋았다. 2년전에 진행되었던 세미나에서 구성원들이 가졌던 생각들이 지금에서야 와 닿는 느낌
은 깨달음의 환희가 아닌 씁쓸함과 좌절이다. 나의 경쟁상대 혹은 동료와의 의식의 시간차가 2년이나
된다는 유치하지만 묵과할 수 없는 사실이 그런 느낌의 원인이다.
오늘도 더 열심히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지난번에 영어작문을 할 때도 느낀 것이지만, 나의 저질스러운 학습능력은 무한히 저주하고 싶다.
오늘도 책 한 권을 읽는데... 마침 세미나가 진행되었던 것이라 원문을 읽고 발제문을 읽으며 내용을
정리하기 좋았다. 2년전에 진행되었던 세미나에서 구성원들이 가졌던 생각들이 지금에서야 와 닿는 느낌
은 깨달음의 환희가 아닌 씁쓸함과 좌절이다. 나의 경쟁상대 혹은 동료와의 의식의 시간차가 2년이나
된다는 유치하지만 묵과할 수 없는 사실이 그런 느낌의 원인이다.
오늘도 더 열심히 걷고 또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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